한 백년 아니 2백년 전의 한국과 일본

요즈음,,조선시대 서민…그니깐 양인의 생활,,삶의 모습이 궁금해져서 기웃거리고 있고,,자연스레 같은 시대 일본서민의 모습도 궁금해서 찾아보는 중이다.

일단 놀라운 것은,,조선말기…노비의 비율이 전체인구의 70% 많게는 85%까지 되었다고 한다. 그니…조선 말기의 서민의 삶은 그냥 노비의 삶이었다. 사람이 아니라..그냥 객체..물건.

우리가 아는 설날 떡국,,,연 날리기…이런거..모두 일제강점기 때 들어온 일본의 서민문화로 보인다. 그러고 보니,,예전 조선시대 그림에서 연날리는 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곰곰 생각을 해보면,,,옷 만들 실도 없었는데,,무슨 연줄로 쓸 실이 있었겠는가… 떡국을 먹는 풍습,,,동지팥죽?쌀도 보리도 없는데 팥이 어디? 암튼 그렇게 비팜했던 조선시대 서민아니 노비의 삶이었나 보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불고기,,식혜(단술)…머 곳감..팥죽…김초밥..연하장…이런 거 모두 일본에서 건너온 것으로 보인다.. 외할머니와 큰 이모는 그러 것들을 잘했는데,,,지금 생각해 보면 일제시대..그냥 괜찮은 집안 규수들이었나 보다.생각보다 일본 스러운 문화가 많았다..

중국 서민들의 벽돌집에서 산 것 같고..일본 서민은 좀 춥긴 하지만 나무로 지은 이층집에 산 것 같긴한데…조선시대 서민의그야말로 개돼지 처럼 산 것 같다…어릴적 조금 시골로 나가면 그떄 까지도 흔히들 말하는 초가집이 있었는데..흑으로 대충 벽을세우고 지붕을 짚으로 올린..그야말로..’우리’였다..

어린 시절 기차의 추억

내 나이 또래라면 누구나 기차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 같은데, 그건 무더운 여름날 통일호에서 사 먹던 계란일 수도 있고, 난생 처음 타본 새마을호의 맛있어 보이는 도시락 혹은 우등열차가 천안부근을 지날 때면 판매원이 외치던 ‘호두과자’ 소리의 기억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어릴 적 살던 곳은 해운대에서 번화가 쪽으로 기차역으로 약 4정거장 떨어진 곳이었다. 낮은 아파트와 주택이 뒤섞인 동네의 저쪽 한켠에서 기차가 다니던 선로가 있었고, 그 선로가 크게 회전을 해서 직전코스에 들어설 때 즈음이면 기차역 “동래역”이 거기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로 기억이 된다. 여름이면 가족이 해운대로 해수욕을 한 번씩 하러 갔는데,,아마도 여름방학기간 동안 딱 1번씩 갔던 것 같다. 그런데 개구장이 국민학생이 바닷가 수영을 하고 싶은게 1년에 딱 1번일 뿐이겠는가.

친구들과 간 적도 있고 혼자 간 적도 있다.

동래역에 가면, 일단 그 큰 문을 열고 역사로 들어가면 왼쪽에는 매표소,,정면에서 개찰구가 있었고 오른쪽에서 대기하는 길다란 나무의자가 놓여있었다. 역사가 크지는 않고,,그냥 일반 주택크기로 느껴졌는데, 나중에 커서 가보지 엄처나게 작은 역사였다.

문을 열고 입구에 들어서서 일단 좌우를 살핀 후에, 왼쪽으로 가서 표를 산다. 목적지는 해운데..요금은 통일호 기준으로 110원? 이었던 것 같다. 돈을 내밀면 딱딱한 분홍색의 마분지에 인쇄가 되어 있는 기차표를 준다. 한 번 만져본 뒤에 주머니에 집에 넣는다.

선로의 플랫폼에 나가서 기차를 기다린다. 기차가 들어오면 신호는 일치감치 파악이 되는데,,선로에서 철이 길게 부딪히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스윽~~슥~~철~철~

그 소리가 들리고 이내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검은색과 주황색을 뒤집어 쓴 기관차가 보이기시작한다.

거대한 쇳덩이 바퀴에 브레이크 패드가 닳는 소리가 날린다 미처 기차가 서기도 전에 길다란 손잡이를 붙잡고 올라탄다 하지만 자리로 가지는 않는다. 자리에 앉지 않는다.

이윽코 느릿느릿 힘겹게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통로의 문에 매달려 바같 바람을 맞으면 간다. 자유를 느낀다. 자유..뭐가 그리 부자유스러워을까? 그 바람이 자유라는 건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도착하면 기차가 미처 서기도 전에 뛰어 내린다. 가끔은 그 뛰어내림의 시기가 너무 빨라 땅에 발이 닿자마자 넘어지기도한다.

휠거머니 펼쳐진 콘크리트 플랫폼 위로 아지랭이가 피어오르고 한여름 햇볕아래 달아오른 철로에서는 한증막의 열기가 피어올라 얼굴을 덮친다. 조금 비릿한 기름냄새도 같이 콧구멍을 덮는다.

해운대역은 고요하다. 특히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는 엄청 고요하다.여름의 한가운데서는 ..역에서 바닷가로 이어진 길은 장사치들과 사람으로 넘쳐난다. 기억에 어떤 사람이 맥주병을 꺠고..그 병으로 어떤 사람을 찌르려 하던 모습도 생생하다..싸움판이었다.

역앞에 광장이 있고..그 앞의 상점가 혹은 그렇게 말하기도 민망한 거리를 지나면 바닷가가 보이고 이내 발은 모래를 밟는다. 바다다.

2026년 3월 13일 금요일 매출액

이전에 한 번 얘기를 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사람이 살아가는,,밥을 먹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현재 나는 물건을 판다.

어제 매출액을 한 번 정리해보자. 금액이 큰지 작은지는 모르겠다.그냥 정리를 아침에 하고 싶어.

아마존 $334 / 484,300원

네이버 257,220

이베이 $36.02 / 52,229원

쿠팡 31,373

옥션 /지마켓 11,950

총 837,072원

목표의 약 절반 수준이다..내 목표는 1,500,000/일 이다. 왜 150만원을 목표로 정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불가능한 금액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마존은 위로 약 100% 상승의 가능성은 있어보이고,,이베이는 250~300%..가능성..물론 영업이익률이 좀 낮은편…

쿠팡 옥션 지마켓은 그냥 사이드고,,네이버는 현재 유지가 목표다…

팔 수 있는데 까지 팔아 보자..

한화오션 채용공고

아침에 여기저기 글을 읽다,,한화오션 채용공고를 보았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한화오션이면 예전의 대우조선이아닌가.

지금부터는 거짓말이다.

난 대우조선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할 뻔 했다. 1999년에는 IMF의 여파로 대기업 신입사원을 채용하지 않았는데, 그중에 그나마 채용 흉내를 낸 곳이 대우랑 삼성이었다. 물론 정규직은 아니고..일종의 인턴이었다. 1년짜리 인턴인데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리라 예상은 했지만…삼성에 들어간 사람들은 정규직이 되었고, 그룹공채 39기? 대우에 입사한 사람들의 대우의 몰락과 함께 그렇게 사라졌다.

대우의 인턴 입사발표는 1998년 12월 이었던 것 같다..입사결정..일종의 합격통지서와 함께 연수원 입소,,그리고 해외산업현장 연수 등의 계획이 적혀 있는 서류뭉치 한 봉지가 배달되었다.

나는 베트남의 대우건설 현장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고민의 고민을..

대우는 연대 분위기가 강한 회사였다. 김우중이 연대 출신이기도 했고, 주변의 핵심인물은 모두 연대 상대 출신이었다. 좋은 학교니 객관적 측며네서는 1차적으로는 자격이 되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내가 연대를 다니지 않는 다는 것….

난 기업에서 크게 되고 싶었다..장난 삼아..아침은 서울에서 먹고, 점심은 홍콩에서 저녁은 싱가폴에서 먹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너스레를 떨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실제로는 비슷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서울-홍콩-뭄바이…

1월 어느날..삼성에서도 합격자 발표가 났다..내 이름도 있었다.. 2월 초 용인연수원(창조관)으로 입소하라고 했다.

머 선택의 고민은 없었다. 그렇게 짐을 싸고,,,용인으로 출발했다.아니 동대문 어디선간 모여서 전세버스를 타고 갔던 거 같기도 하고 기억이 가물가물..

입사를 해서 회사 배치를 받고 보니 해당 회사는 고대판이었다…아니 그당시 90년말 200년 초는 삼성자체가 고대판 이었다.

1999년 2월에 삼성입사를 하고,,,전기전자부문에서 근무하다 2000년 4월에 퇴사를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삼성에서의 1년은

내 직장경력의 큰 자산이었고,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유는 나중에 한 번 적어 보겠다..일종의 양심적 측면에서의 고민이 있었다.

나오기로 결정한 것은 대단히 잘한 결정…아니 운이 좋은 결정 이었다.

살다보니…사람들의 맘이 보인다

부쩍 드는 생각이…신문이나 다른 언론에서 어떤 사람의 말을 전하면,,그 말한 사람의 의도,,맘,,,머…정신상태…그런 것들이 훤히 보인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내가…착각 맞나?

암튼 이제는 보인다.. 예전에는

처음에는 어릴 때는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고,

조금 나이가 드니…모두 자신의 이익에 매어 있다고 판단을 했다…그게 40이 넘어서 이다..

그러다…생각보다..우리 사회에 선천적 정신병자,,지능이 낮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그런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사회생활을 하는 경우도 많고…돌아보니..나도 그런 사람을 꽤나 경험했던 것 같고..어쩌면 나도 그런 부류의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통일교 신자도 정신병자지만 일반 기독교 신자도 큰 틀에서는 정신병자가 많다고 본다..물론 사악하고 머리 좋은 사람도 많고…덩치가 크니…오래되었으니..그럴듯 하게 보일는 것 아닐까? 예수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사기꾼이 아닐까…어쩌면 그의 제자들이 사기를 친 것 일 수도 있다..

이제는 그냥 복합적으로 보이는데,,,사람별로 구분이 된다..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트럼트가 전쟁을 왜하고..네탄야후는 왜하고..이재명은 왜 저렇게 말을 하고…

그 사람을 여러가지 배경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생긴 것 같다.

많히 오만한 소리인데..최근데 그런 느낌을 상당히 많이 자주 가지게 되고,,경험하다 보니..스스로 착각에 빠진 것 같다.

사람의 맘이 보인다.

한동훈

글의 제목을 사람의 이름으로 사용하기는 다소 부담스럽긴한데..그렇지 한동훈 대단한 위인도 아니고… 격정적인 소설의 주인공도아닌데..

우선 드는 생각은, 메세지가 참 공허하다는 점..그냥 막 뱉어낸다는 느낌. 독서량 절대부족..아니 책을 안 읽어도 좋은데..괜찮은데..머 김영삼은 책 많이 읽어서 그랬나…조금 생각의 파편성이 농후하고…정리가 되지 않는다.

현대고 전교1등에 서울대 법학과…사법고시…흔히 말하는 공부 천재다..공부 전재…

설대 법학과를 가려면….일단 고등학교에서 과목을 가리지 않고 모두 잘 해야한다…수학도 국어도 영어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설대 법학과를 나오고 사법고시를 패스한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말을 잘 못한다..잘 못 한다기 보다는 공감을 끌어내지 못한다..마 그 정도..이건 굉장히 좁은 생각이고 다소 잘못된 편향적 생각일 수도 있는데….이 생각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한동훈 윤석열 이다..

아마..여태껏 본인들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았을 것이다…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선생들도 자기편 이었고…사회 나오니 영감 영감하면 알아서 기어들어오고….그러다..문뜩 일반적인 사회환경으로 돌아오니 놀래서 적응이 안 되는 것인가? 아님 특정 지능이 부족해야만 설대 법대에 사법고시를 패스할 가능성이 높은가?

한동훈이 했다는얘기들을 곰금히 생각하면 손발이 좀 오그라든다..어제 나온 얘기…윤석열이 집권하고 있었어도..지금 주차 6천 갔다..이 얘기는 왜하냐? 머리가 좀 나쁜 거 같기도 한게 아니라..머리가 나쁘다..

서울시청 로터리 화단

오늘 얘기는 머랄까 약간 과거의 에피소드 나열 비슷하게 진행이 되는데,

2000년 이었다…여름에서 가을 너머가는 시점…당시 다니던 직장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어 2000년 이라는 연도는 정확하다.

북창동에서 회식 비스무리한 것을 했다..술을 꽤 마셨고,,,흔히 말하는 룸싸롱을 간지 안 간지는 모르겠다. 지금 기억으로는 1차 2차에서 너무 마셔서…혼자 집으로, 본능적으로 가는 것을 택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택시를 잡은 기억이 있고,,,오바이트가 너무 쏠려서 내려달라고 한 기억이 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뭔가 이상했다…나는 서울 시청 앞 로터리 화단 한 구석에서 일너났다..사람들의 시선도 보이고…부끄럽다는 느낌은 없었는데..일단 여길 빨리 떠야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참…

외할머니집 대청마루

어릴 때 5-9세까지 외할머니집에서 자랐다.

연지라는 못을 바라보는 앞 마당과 방 사이에는 좀 넓은 대청마루가 있었는데, 난 그 대청마루를 좋아했다.

투박한 판자나무,,어쩌면 그보다 거 두꺼운 나무를 가로세로로 짜마춘 전통 대칭마루였는데..그 고동색 색깔은 페인트인지 천연 염료인지느 모르겠으나,,,유성페인트의 느낌이 없던 걸로 봐서는 뭔가 천연 염표였던 것으로 보인다..

여름에 소나기가 내리거나 태풍이 와서 큰 비가 오면,,,난 그 대청마루에 옆드려서 처마 밑으로 혹은 마당으로 그리고 연못 수면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는데…뭐랄까 일단 시원한 느낌..여름의 무너위가 사라지는..그리고 이따금 튀어 들어와 내 얼굴을 때리는 빗방울이 맛있었다.

다시 그 대청 마루에 엎드려..시원하게 쏱아지는 소낙비를 보고 싶다..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가정방문

초등학교 때는 가정방문이라는 것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혹 좀 사는 학생들 집만 방문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짐작이 되는 것은..알아서 기어들어왔다..란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중학교를 들어 갔는데, 3월 개학을 하고 4월 정도에 바로 가정방문이 계획되었다..30후반 혹은 중반 정도의 그 여자 담임은 3-5명씩 방과후에 가정방문을 다녔다. 3-5명의 학생들과 같이 같은 동네에 있는 학생의 가정을 방문하였는데, 해다 학생의 집을 방문하는 동안 다른 학생들은 집 밖에서 기다리는..그런 형식이었다.

중학교 시절 우리집은 좀 지저분했다. 난 그걸 아주 오랬동안 나의 삶에 대한 궁극적 질문 중의 하나로 여겼는데…나중에야 이유를 알았다. 아버지가 ADHD였다..엄마는 나름 한다고 하다가 진짝 포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집을 가니 집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아파트랑 방이 3개 였는데, 가운데 있는 방에 아버지가 한약재를 엄청 쌓아뒀는데..그건 건들지 못한 채 였다.

담임선생님은 공부를 하는 곳이 어리냐고 묻고는 그곳을 둘러보고..조금 놀랬다. 당시 원래 있던 내방에서 내가 책상을 큰 방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큰방에는 TV가 있었는데…그러한 구조가 담임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물론 큰방에는 침대도 없었다.

잠깐 어머니랑 얘기를 하고 곧 일어서려고 하는데 어머니가 하얀색 편지봉투를 건냈다..촌지였다..나중에 어머니는 3만원을 넣었다고 했다.. 난 그 의미를 정확하게 몰랐다..그냥 단순하게 돈을 좀 줬으니..앞으로 나에게 잘 해주려나…그정도..이정도면 사악한 건가?

심지어는 추석때 간 할아버지 집 1층에서 가게를 하는 아줌마,,그 아줌마의 아들이 같은 중학교를 다녔다..에게 엄마가 담임선생님에게 돈을 줬다는 얘기를 했을 정도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ADHD의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난독증이 좀 있었던 것 같고..가슴 울렁거림..같은 거도 있었다. 청소하고 뭐라도 계획 세우고 하는 걸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아무튼 지금은 꽤 조심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그 시절 그렇게 돈을 수금하고 다니던 교사는 흔했다.